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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역 어떤 시기를 다루든 철학사를 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철학사가 시도되는 건, 과거의 철학이 오늘의 삶과 여전히 관계를 맺기 때문이고, 평소 감각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삶과 사회 곳곳에 그 땅, 그 사람들의 철학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이곳에도 한국적 사유가 있을 터, 그것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른 과정을 살피는 일이 제대로 시도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제라도 1300년 한국지성사를 아우르는 온전한 철학사가 나왔으니 반가운 일이다.
오랜 세월 성리학을 연구하고 동아시아 고전을 해설한 전호근은, 유학은 물론이고 불교, 도교, 동학, 마르크스주의 철학, 기독교 사상에 이르는 폭넓은 사유의 세계를 넘나들며, 원효, 의상부터 함석헌, 장일순까지 이 땅에 뿌리 내린 생각의 거인 서른다섯 명을 불러내 서로 주고받은, 오늘에 이어지는 영향을 ‘한국철학사’란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강의하듯 풀어내는 입말체는 부드럽고, 숱한 저술과 개인 문집에서 길어 올린 원문은 정밀하고, 이를 가로지르는 그의 해석은 탁월하니, 한국철학사의 전모가 비로소 온전하게 드러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