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이 책의 한 문장

언제부턴가 나는, 침략전쟁을 재검토하지 않고, 그 시기에 어떤 전쟁범죄를 거듭해서 저릴렀는가를 검증하지 않고, 그 시대를 부인과 망각으로 넘겨버리는 자세가 얼마나 우리의 문화를 빈곤하게 만들어왔는지 고찰하고 싶어졌다. 죄를 자각하고 살아온 소수의 정신을 통해 다수의 그림자를 부각하고 싶었다.

전쟁과 죄책.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예를 들어, 〈에디 아버지의 구혼〉에 나오는 부엌 장면은 다른 무엇보다도, 부엌에 있는 식기들의 연약함과 삐걱거리는 높은 의자의 불안한 모습 및 올바른 부모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주어진 의미들은 부엌 장면이 전달하는 의미에 있어 본질적이다. 그러나 그 의미들은 구성요소들로 작용할 뿐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이럴 때 문제는 영화가 각 구성요소들이 의미심장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뛰어난 배치능력을 발휘하느냐는 것이다. 결국 영화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은 구성요소 간의 상호관계이다.

영화로서의 영화. V. F. 퍼킨스 지음, 임재철 옮김

나는 눈을 감고 바라봐요. 어느 날 듣는 게 보는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을 듣고 있다는 걸 몰라요.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는 걸, 표정을 주고받는 걸, 몸짓을 주고받는 걸. 들려요, 보여요. ― 「오늘 밤 내 아이들은 새장을 찾아 떠날 거예요」

무지개 눈. 김숨 지음

‘다름’이 가난과 맞물리면 더욱 날 선 배제와 조롱이 파고든다. _〈프롤로그〉에서

인간 차별. 안희경 지음

나는 번역을 명료하게 정의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은 없으니, 비유를 통해 비스듬하게 다가가려 한다. 내가 이 책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흰 고래를 정의하려는 이슈메일의 시도 같은 것이 될지 모른다. 이슈메일이 그랬던 것처럼, 번역의 사례를 들고, 번역을 분석하고, 번역을 해부하고, 번역을 설명하려다가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여기 쓴 글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번역을 어떻게 (같은 말로) 다르게 말하고 있느냐는 이야기이자, 번역이라는 실체 없는 행위를 말로 설명하려는 기도이자, 불가능한 번역을 정의하려는 불가능한 몸짓이자, 흰 고래를 그리려는 시도다.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홍한별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