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수렵, 채취 경제에서 곡류의 재배 및 가축 사육에 성공하여 농업 사회로 이행한 문명사의 획기적 사건. '농업 혁명'을 검색해 보면 나오는 대략의 내용이다. 그리고 농업 혁명은 국가라는 커다란 공동체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농경, 정착, 국가로 이어지는 그 자연스럽고 연속적인 진보와 문명의 서사는 인류를 매혹시켜 왔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배워 왔음은 물론이다. 그것은 마치 코페르니쿠스 시대의 천동설처럼, 정설을 넘어 하나의 진리로 받아들여진 듯하다. 이 책은 바로 그 국가의 기원에 대한 천동설을 전면 부정한다. 코페르니쿠스 역을 맡은 이는 정치 및 인류학의 대가 제임스 스콧이다.
예일대에서 최고의 교수에게 주어지는 영예인 스털링 교수이기도 한 그는 이 책에서 국가라는 형태는 절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며 기존의 서사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국가는 착취를 위해 만들어진 불필요한 집단이라는 노대가의 도발적 시선은 시종일관 날카롭고 강렬하다. 곡물(에서 비롯된 서사)에 반대한다는 의미와 순리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를 모두 내포한 원서 제목(Against the Grain)도 절묘하다. 저자는 묻는다. 국가에 소속됨이 과연 인류의 보편적 열망이었는지를. 국가가 만들어진 진짜 이유를 추적해 가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 국가가 갖는 의미와 역할에 대한 논의 역시 활발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