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 무엇을 사는 일이 가장 쉬운 일로 꼽히는 세상이다(물론 돈이 있다면 말이다.). 소비하는 이들은 최고로 대접을 받(는 듯 보이)고, 조금이라도 쉽고 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방법들이 끊임없이 나온다.(재앙이다.) 이렇듯 소비문화가 오늘날 인류의 가장 중요하고 고유한 활동으로 자리를 잡으니, 시발비용이나 탕진잼처럼 다양한 소비형태를 일컫는 신조어도 쏟아진다.(이 말들의 뜻을 모른다면, 아직 더 소비해도 괜찮다.) 그런데 이렇게 ‘소비하는 인간’이 불현듯 탄생했을까? 아니다, 우리에게도 찬란한 역사와 전통이 있고, 이제 그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역사학자 설혜심은 소비를 중심에 두고 벌어지는 다양한 풍경을 상품, 판매, 소비자, 판촉 등으로 나눠 설명하는데, 신부의 드레스가 신랑의 턱시도보다 비싼 이유, 포르노로 읽힌 근대 초 의학서의 비밀, 카탈로그 판매로 시작된 홈쇼핑의 발전사까지, 그간 소비자를 매혹시킨 갖가지 숨은 역사가 드디어 빛을 발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애국소비와 소비자 운동 등 소비의 정치성까지 함께 다루니, 잠시 멈추고 나의 소비를 들여다볼 계기로 삼을 만하고, 욕망의 평등화와 소비의 평등화를 고민하는 지점에서는, 급여명세서와 카드명세서를 번갈아 보게 된다. 고민이 깊겠지만, 이 책은 소비해야 한다. 우리의 소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