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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학과지성사에서 1986년 8월 1일 초판 발행된 것입니다.
짙은 토속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생명의 근원 탐구와 인신 출현의 계시로써 독특한 설화적 세계를 재창조한 박상륭의 중 단편소설.
아래 글은 성석제의 글에서 일부 발췌했습니다.
그 책에는 두 개의 소설이 들어 있었다. 「열명길」과 「유리장」. 서구식 교육만 열몇해 강하게 받아온 덕분인지 「열명길」도 「유리장」도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었다. 바람이 잉잉 우는 눈길 위에는 들춰볼 사전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특히 한자로 쓰인 유리장은 「구리장」인지 「강리장」인지 「구리량」인지 서너 해가 지나도록 헷갈렸다. 이제 뜨뜻한 방안에 사전을 곁에 둔 처지로 제법 알게 되었으니 말해볼까. 「유리」는 중국의 주 문왕(주 문왕)이 은의 폭군 주에게 유폐되었던 곳을 말한다. 얼마 전에는 영화 제목으로도 쓰였다. 「장」은 작가 박상륭의 이전 발표작 「쿠마장(각설이 일기 기일)」이나 「산동장(각설이 일기 기이)」로 미루어 장터, 장면이라는 뜻을 중의적으로 쓰는 것 같다. 하여간 그때 나는 제목의 뜻을 알기 고사하고 제대로 읽지도 못하면서 산비탈의 양지 같은 소설에 빠져들었다. 「리로 리런나 로리라 리로리 로라리 리로런나 로라리 리로리런나 로리라 리로리로라리」의 노래가 들려오고 끝나지 않을 듯한 요설, 주문이 풍년든 세계로. 또 연꽃자세, 시럽, 매독, 화룡, 대제장, 아편, 자신을 비우고 비워 진공이 될 때까지 비우는 방법, 사면 육십사방이 바다, 인구 이천삼백여 명, 그 모든 것이 뒤섞인 중음계 열탕 같은 나라 속으로.
소설에서 눈을 들었을 때 새삼 내가 20대라는 게 다행스러웠다. 나의 20대에, 작가가 20대에 쓴 20대식의 혼돈스러운 소설에 풍덩 빠진 것은 행운이었다. 지금 내게 이 소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소설은 20대의 혼돈 에너지로 충만하고 간헐적인 충일에 의해 20대를 감득시킬 수 있는 작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심심할 때 지금의 20대는 그 무엇을 제대로 먹고나 사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 무엇이 무엇인가는 아까 말했다시피 모른다. 무엇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모른다, 중요하다, 아니다도 필요없다. 그럼 도대체 넌 뭐며 난 뭐란 말이냐. 이럴 때 들려올 법한 박상륭의 일갈인즉. 아으, 누가 저 독룡을 퇴치하고 공주를 구할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