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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내부수리중]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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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인 빅토리아 베넷(Victoria Bennet)의 아름다운 들풀 에세이 『들풀의 구원(All My Wild Mothers)』이 한국의 독자들을 찾아왔다. 야생 정원을 가꾸면서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상실과 고통을 자연의 생명력으로 바꿔나갔던 10년의 회고를 선연하게 그려낸 에세이다.
저자는 언니의 죽음과 아들의 지병 등 자신이 지나온 삶의 조각들을 치유의 힘을 지닌 90개의 들풀과 연결 지으면서 한 권의 압화집처럼 펼쳐낸다. 회복력을 상징하는 데이지, 역경에 맞설 힘을 주는 서양민들레, 외로움을 물리치는 붉은장구채, 희망을 안겨주는 보리지… 아름다운 들풀로 무성한 야생 정원에 서서 시인은 말한다. “때로 우리는 부서짐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부서진 덕분에 살아갈 수도 있다”고. 이 책을 읽기 전에 ![]() : 내가 망가져 버렸다고 느꼈던 고비들에서, 타인으로부터 간절하게 듣고 싶었던 한마디가 있었다. 망가지지 않았다는 말. 그러나 아무에게도 들어본 적은 없고, 결국 나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거듭거듭 들려주는 수밖에는 없었다. “망가지지 않았어.” 『들풀의 구원』에서는 이 말을 아들에게 들려주는 시인 엄마가 등장한다. 실은 자기 자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 덧붙이면서. 마당에다 씨앗을 심으면서.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들풀들을 한껏 키워내면서. 망가짐이라는 것이 종내는 더 단단한 두께를 만들어가는 나이테와 다름없음을 직접 목격하면서. ‘경이’가 머나먼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이렇게나 섬세하고 아름답게 경험해내면서. 이 책을 무릎에 얹어두고서, 아픔이 어떻게 따사로움으로 진화하는지 고통이 어떻게 안온함으로 변화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언어로 대화해보고 싶다. 나처럼 망가져 버렸다고 괴로워하는 많은 이들과. 저마다 체득하며 획득해온 야생성의 진가에 대하여. : 우리는 삶이 공평하지 않고, 구원을 바란다면 스스로 해내야 함을 압니다. 살아 있는 모든 건 결국 죽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죠. 우리는 그런 삶의 주인공,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물이기에 사는 것이 두렵고 버겁고 슬픕니다. 생물의 숙명을 가진 우리는 주변의 작은 잡초와 다를 게 없지요. 그러나 이 책은 그 작은 풀처럼 싹을 틔우고 꽃과 열매를 맺는 경이로움도 우리의 숙명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당신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요. : 이파리 같은 책장을 넘기며 어린 날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먼저 풀들을 뜯어 모아 돌로 내리찧습니다. 색도 향기도 한결 짙어진 이것을 입가로 가져가 먹는 시늉을 하면 음식이 되었고 손등 위에 얇게 펴 바르면 약이 되었습니다. 식물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혹은 실제로 식용이나 약용이 가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놀이를 하며 익힌 것은 날로 무성해지는 스스로의 시간을 끌어안는 법이었으니까요. 빅토리아 베넷은 생동의 시간은 물론 고통과 상실의 시간까지 와락 끌어안습니다. 삶의 어둠과 빛이 쉴 새 없이 넘실거리고 생각의 마름과 젖음이 달리 올 때도 일상의 자리를 지켜냅니다. 익숙한 사랑 앞에서는 마른 잎처럼 바스러지지만 낯선 세상과 마주할 때는 돌처럼 단단해집니다. 물론 가시 같은 기억에 찔리기도 하고 슬픔에 처절하게 지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이내 잎맥 같은 결을 따라 고운 마음을 쓸어냅니다. 덕분에 책장을 덮는 우리의 손끝에도 짙고 푸른 빛이 묻어납니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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